‘두고온 고향 남겨진 이야기’(1)
노경달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공생공사닷컴은 3월 31일부터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와 공동기획으로 1945년 8월 15일 당시의 북녘 땅, 미수복 지역 여행을 시작합니다. 실향민의 값진 애향심을 후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두고온 고향의 이야기들을 찾아갑니다. 우리의 반쪽… 우리가 기억하고 불러주지 않으면 멀어집니다. 미수복 황해도 해주시에서 출발해 미수복 함경남도 해산군까지 97명의 명예시장군수들과 고향과 나라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자 합니다. 이북도민들이 고향 땅을 밟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묵은 소원이 조금이라도 와 닿을 수 있도록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두고온 고향 남겨진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매달 2회씩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노경달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노경달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입은 옷은 남루하지만 낭랑한 말소리와 빛을 풍기는 거지 청년의 눈매에 홀딱 반한 이름 높은 학자가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외동딸과 짝을 맺어 주었다.

하룻밤 사이 학자의 사위가 된 거지 청년은 정숙한 아내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꿈 같은 나날을 보내다가 서울로 올라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금의환향 길에 올랐다.

때는 장마철이라 마을 앞의 내가 넘쳐흘러 멀리서 가슴을 죄며, 장인과 아내에게 장원급제한 희보를 소리쳐 알렸고, 부녀는 장원급제 사위를 빨리 맞아들이기 위해 일꾼과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곳간에 쌓아둔 수백 석의 곡식으로 개천을 막고 다리를 놓아 사위를 맞아들였다. 그 후부터 이 개천의 다리를 ‘섬다리’라고 불렀다.

쌀섬으로 다리를 놓아서 사위를 맞아들였다는 아직까지 수복되지 아니한 1945년 8월 15일 현재 황해도 해주시 ‘섬다리’ 마을에 담긴 설화다.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청사. 이북5도위원회 제공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청사. 이북5도위원회 제공

곡식이 풍부하므로 가축도 사료가 좋아 고기 맛도 유별했다는 해주는 우리나라 3대 어장의 하나인 연평바다를 안고 있어 인심이 후덕하고 먹을 걱정은 안 하고 살아온 고장이었으니, 자유를 찾아 월남한 해주시민들이 북녘에 두고 온 유서 깊은 고장을 잊지 못하는 것은 더욱 남다르다.

해주를 비운 사이 선조들이 알뜰하게 가꾸어 온 그때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는지. 옥계의 벽수는 푸른 거품을 품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지. 그들은 그 모두가 궁금할 따름이다.

그래서 두고 온 고향 그리운 산하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들은 들, 골은 골, 마을을 마을대로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름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것은 이들이 그곳을 떠난 이 아직도 그곳에 사는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850만 이북도민과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수백 석의 곡식으로 개천을 막고 다리를 놓아 사위를 맞는’ 심정으로 이북5도위원회가 앞장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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