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복무지침, 권고를 권고라 믿는 공무원 없어
감사원 출신 민정라인에 “감찰 세진다” 초긴장
“걸리면 간다” 모임도 취소하고, 끝나면 집으로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세종시와 정부청사 모습. 공생공사닷컴DB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에서 바라본 세종시와 정부청사 모습. 공생공사닷컴DB

세종시 사회부처에 근무하는 P 사무관은 오래전 자신이 주도해서 잡은 이번주 금요일 서울 가락시장 횟집 모임에 불참을 통보했다.

약속한 날이 다가오면서 망설이는 친구들에게 “뭐 우리끼리 모이는데 코로나19가 무슨 문제냐”며 큰소리를 쳐왔는데, 체면불구하고 못 간다고 선언했다.

7명이나 되는 모임 규모도 그렇고, 다른 아닌 저녁자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린 아이들이 있어서 아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얘기만 나와도 경기를 한다. “이 판국에 버스 타고, 기차 타고 서울 간다고…에라이~ 갔다가 집에 안 올 거라면 가라.”

소나기 피하자…약속 줄줄이 파기

그러나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복무 감찰이다. ‘퇴근 후 집으로 바로가기’ 등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벌이는 판에 공무원이 친구들과 저녁을….

만에 하나 코로나19 확진자라도 나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친구들은 비겁하다고 놀렸지만, 소나기는 피해야 한다. 눈 꼭 감고 모른척했다.

세종시 공직사회가 추위를 타고 있다. 안전지대로 알았던 세종시인데 해양수산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면서 국민의 눈총은 물론 세종시민들로부터도 욕을 먹는 판이다.

해수부 공무원도 자신이 확진자가 될 줄 알았으면, 식당에 밥 먹으러 갔겠는가. 하지만, 결국 확진자가 돼 부처 욕 먹이고, 단골식당 장사 망치고….
 
권장사항이라고 그대로 믿는 바보가 어딨어요?
 
이 때문에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식당가기가 겁난다. 혹시라도 코로나19에 걸려서 민폐 끼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22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코로나19 특별복무지침을 시행 중이다. 교대 원격근무나 유연근무는 의무사항이고, 퇴근 후 집으로 바로가기, 불필요한 외출 및 사적 모임 연기, 국내외 출장 자제 등은 권장 사항이지만, 공무원 가운데 누구도 이를 권장사항으로 보지 않는다.

“말이 권장사항이지 이를 진짜 권장사항으로 받아들이는 바보가 있나요.” 정부세종청사 경제부처에 근무하는 한 서기관의 말이다.

이때 걸리면 시범케이스라서 공직생활에 치명타가 돼 회복불능이 될 수도 있다. 공직사회에서는 “코로나19가 좀 진정되면 집단감염 사태가 난 해수부 쪽에서 곡소리가 날 것”이라고 쑥덕거린다.

지금은 물밑에 있지만, 감염조사 과정에서 모든 게 속속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 출신으로 짜여진 민정라인도 맘에 걸리네

23일 인사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이남구 공직감찰본부 본부장이 간 것도 공직사회에서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김조원 민정수석도 감사원 사무총장을 하다가 갔는데 공직기강비서관까지 감사원 출신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종시 공무원들은 복무감찰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무총리실이 시도때도없이 감찰을 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지키기, 서울 출장 횟수와 이유 등은 단골 메뉴다. 특히 세종정부청사 공무원들은 김조원 민정수석이 청와대에 자리를 잡은 뒤 복무감찰이 더 세졌다고 느낀다.

실제로 감찰이 더 세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감사원 스타일의 ‘깨알감찰’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가면 공직사회에서는 “어 또 복무감찰 있겠구먼” 한다.

대통령 해외 순방 전후해 복무감찰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별복무지침이 내려진 마당에 공직사회 속성을 속속들이 아는 감사원 출신으로 청와대 민정라인이 채워졌으니 세종시 공직사회의 체감온도는 영하권일 수밖에 없다.
 
일탈은 대가치러야겠지만, 사기까지 죽이진 말았으면
 
세종 정부부처 고참 서기관은 “전국에 108만 공무원이 있고, 세종 정부부처에만 1만 5000명이 있는 데 문제 있는 공무원이 없겠느냐”면서 “문제가 있으면 처벌을 하고, 지탄도 받아야 하겠지만, 자칫 전체 공무원들의 사기까지 죽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 부처 전직 차관은 “밀레니얼 세대 젊은 공무원들이 들어와서 문화가 좀 바뀌긴 했지만,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소명의식이 있다”면서 “최근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로 다소 신뢰를 잃은 부분이 있지만,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부단히 조심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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