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중심에서 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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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중심에서 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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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0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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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4)
이서인 시인·여자정훈장교1기
이서인 시인·여자정훈장교1기

퇴직자로 지난 1년을 살아오면서 내 생활 중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바로 너 중심에서 나 중심으로 관계의 재설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내 휴대전화의 사용 범주와 기능이다.

첫 번째, 업무로 인한 관계 삭제하기다.

지난해 1월 내 휴대전화 주소록에는 2950개의 연락처가 있었고 그 중 3분의 2는 주로 직장 일로 맺어진 관계들이다.

현재는 2280개가 남아있으니 일 년 새 670개를 정리한 셈이다. 삭제된 연락처의 우선순위는 최근 5년 이내에 한 번도 통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주소록을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퇴직 후에는 기존의 업무 중심 관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나 중심의 선 긋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군인들은 다른 직업군보다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학연, 지연에 빗대어 ‘군연’(軍緣)이라고 한다. 직업군인의 경우 30년을 복무한다고 볼 때 통상적으로 15회 이상 근무지를 옮겨 다니게 된다.

부대 전입을 가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데 수직적으로는 지휘부와 각 부서 참모 및 실무자 30여 명, 예하 부대 관계자가 30여 명이다. 수평적으로는 본인이 속한 처·부의 인원이 10여 명 정도 된다.

거기에 내가 속했던 정훈병과는 공보(公報)가 주요 업무 중 하나라 어느 부대를 가든지 지역 언론사 기자들과의 만남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그 인원 또한 20여 명이니 한 부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약 100여 명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때 얻어진 연락처는 군인들의 개인 업무일지인 육군 수첩의 제일 마지막 장 주소록에 고스란히 수록되었다. 다음 근무지로 옮겨가게 되면 주소록을 또다시 새로운 수첩에 추가하다 보니 근무를 오래할수록 육군 수첩의 무게는 점점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중에 간간이 삭제되는 주소록도 있기는 하지만, 군의 특성상 다른 근무지에서 또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 숫자는 아주 미미했다.

다행히도 1990년대 중반에 보급되기 시작한 휴대전화 덕분에 육군 수첩은 홀쭉하게 되었지만 30여 년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업무로 맺어진 관계는 차곡차곡 휴대전화기에 쌓여져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 주소록은 앞으로도 해마다 200개 이상 삭제가 되어 관계 정리가 될 예정이다. 양적인 관계에서 질적인 관계로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 번째, 잊고 지냈던 관계 소환하기다.

이 관계는 주로 내 휴대전화 기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톡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주인원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창들이다.

이 방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새 없이 대화가 이어지고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정보들도 많이 오가지만, 현재 내 삶에 가장 활력소를 주는 관계들이다. 바로 내가 원해서 만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역 군인 시절에 흔히 들었던 말이 집안에서 장남은 직업군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운구를 들어줄 친구들이 없어서라는 이유이다. 군인들은 학창 시절 이후 고향을 떠나게 되면 전역할 때까지 30여 년 이상 타향살이를 하게 된다.

1~2년마다 근무지를 바꾸게 되고 휴일에도 혹시 모를 비상사태 대기로 인해 근무하는 부대를 멀리 벗어날 수 없다. 명절에도 일정 인원은 당직근무를 서야 하니 고향을 자주 방문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군인들은 세월이 갈수록 자연히 학교 동창들과 소원해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군에서는 상을 당하면 가능한 단체 조문을 하도록 배려한다. 친구 관계를 강제로 차단당한 상주가 너무 외로우면 안 되니까.

나 또한 30여 년을 돌아와 이제서야 조금씩 옛친구들과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여고 동창회장을 맡으면서 친구들 간에 소통의 끈을 이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세 번째, 새로운 관계 추가하기다.

이 관계는 주로 SNS의 개인 톡방이나 밴드를 통해 소통하고 있는 관계로서 직장생활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한 인생 2막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시인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문학회 동인들과의 만남은 삶의 동력을 불어넣어 준다. 최00 시인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데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욱 고통받고 있는 사회 저소득층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애태우고 있는 천사 같은 분이다.

박00 시인은 간호장교 출신으로 요즈음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밥 봉사를 못하고 도시락으로 대치하고 있다고 시름이 깊으신 꽃 같은 분이다. 글로서 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시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분들을 만나서 내 후반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다.

최근에 더욱 가까워진 분들이 있는데 주로 경제적인 활동으로 친해진 부동산 사장님과 법무사, 세무사 등이다.

요즈음 아파트 시세가 어떤지 내년에는 매매를 해야 할지 창고 임대로 인한 세금 신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앞으로도 내가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하는 경제활동으로 인해 추가된 관계이다.

인생 2막의 출발은 1막에서의 너 중심이 아닌 나 중심으로 재설정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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