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대란…우체국 창구직원들의 절절한 이야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돈 주고도 마스크를 살 수 없는 ‘마스크 대란’이 빚어지고 있다. 대통령도 머리 숙이고, 총리, 여당 대표, 장관까지 줄줄이 사과를 했지만, 마스크 대란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공공 마스크를 우체국과 농협, 약국 등을 통해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밤새 줄 서서 살 수 있는 마스크는 달랑 몇 개다. 이마저도 앞으로는 일주일에 두 장으로 제한된다. 창구직원들은 마스크를 놓고 소동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고, 애꿎은 약사나 창구직원만 욕을 먹기도 한다. 오죽하면 우체국 창구 직원이 아침에 출근하는 게 무섭다고 할까. 일선 우체국에서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는 직원들이 공생공사닷컴으로 보내온 수기를 압축해서 게재한다.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주민들의 긴 줄. 이들은 아침 6시부터 나와서 줄을 섰지만, 대부분은 사지 못 하고 돌아가기 일쑤다. 독자 제공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주민들의 긴 줄. 이들은 아침 6시부터 나와서 줄을 섰지만, 대부분은 사지 못 하고 돌아가기 일쑤다. 독자 제공

“오늘도 출근이 무섭습니다”(경남의 한 우체국 창구직원)

이제 출근하는 게 무섭습니다. 사람들도 무섭고. 평소에 우체국에 오셔서 늘 웃으시며 고생 많다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는 그런 주민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전화 민원은 더 심합니다. 욕설은 너무 쉽게 나오고 우체국은 국민의 적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습니다. 창구 앞에 비치한 감정노동 보호 문구가 지금은 너무 어색하고 낯설기만 합니다.

어제와 다름 없이 아침 일찍부터 길게 선 줄은 마치 전쟁터의 보급소 마냥 처량해 보였습니다.
번호표를 빨리 달라, 의자를 달라, 뜨거운 물이라도 달라 등등 각자 요구사항은 너무나 많지만, 우리같이 작은 우체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10시쯤이면 마스크가 도착합니다. 숫자가 맞는지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5개씩 묶는 작업을 하고 다시 한번 85세트가 맞는지 확인을 합니다. 준비가 다 되면 누구에게까지 판매될지 주민들 모르게 숫자를 세어 봅니다. 86번째 주민의 얼굴을 스치듯 봅니다.

오늘 판매 수량 85세트이니 못 받으시는 분들은 죄송하지만, 내일 오셔야 합니다. 이 말도 수도 없이 했지만 150여 명은 꿈쩍도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대충 봐도 자신이 오늘 마스크를 받을 수 없는데도 그래도 기다리시니 답답하기도 하도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여기저기서 항의가 이어지고 주민 분들 나름대로 논리적 설명으로 방법을 제시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냥 서서 먹먹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가슴속 어딘가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더니 눈물이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 오늘도 무서운 업무가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또 무서운 것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다음주에는 9시 30분에 팔 수 있게 해주세요”(경북의 한 소도시 우체국 창구 직원)

마스크를 팔고 있는 우체국 창구 모습. 마스크가 다 팔렸지만, 아직도 자리를 뜨지 못 하고 서성이는 주민들. 독자 제공
공적 마스크를 공급하는 우체국 창구 모습. 마스크가 다 팔렸지만, 주민들은 자리를 뜨지 못 하고 서성이고 있다. 독자 제공

오늘도 새벽에 눈을 떴다. 보통 7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지만 요즘 며칠은 6시에 일어난다. 우체국에 도착한 시간은 8시. 벌써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더 쌀쌀했다. 맨 앞줄에 쪼그려 앉아 계시는 할머니께 몇 시에 나오셨느냐고 물으니 6시부터 기다리고 있다고 하신다. 이게 무슨 난리인지.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 우체국의 직원은 4명. 모두 8시10분쯤에 출근해서 빨리 업무 준비를 하고 우선 추위라도 피할 수 있게 우체국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한분 두분 어느새 우체국 안에는 30여 명이 구석구석 앉아 계시고 못 들어오신 분들은 여전히 밖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주민 한 분이 소리를 친다. 오늘 판매 수량은 85세트이고 이미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100명이 넘으니 빨리 번호표를 나누어 달라고 한다. 그 목소리, 아니 아우성은 열이 되고 스물이 되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안 들으신다.

어제 있었던 일을 큰 목소리로 설명드렸다. 어제도 똑같이 말씀들 하시기에 우리도 주민분들 덜 고생하시라고 9시 30분에 번호표를 나누어 드리고 대부분 돌아가셨다.

그런데 뒤늦게 오신 분이 소리를 치신다.

“대기 인원이 없어 너무 기뻐 줄을 서고 있는데 벌써 다 번호표를 나누어 줬다니 왜 그렇게 하냐, 11시 판매 시간을 맞춰 줘야지.”

고성과 욕설, 심지어 몸으로 거칠게 밀고 항의하는 바람에 결국 경찰까지 출동해서 정리되었으니 오늘은 원칙대로 하겠다고 했다.

똑같은 얘기를 11시 전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니 목은 이미 쉬었다.

11시가 되자마자 85세트는 순식간에 나가고 그 뒤에 못 받으신 30여 명은 우체국 안에서 고함을 치신다. 내일 판매분에 대해 미리 번호표를 달라는 것이다. 오늘 2시간을 기다렸데 내일 또 기다린 말인가. 그냥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막무가내이다. 결국, 또 경찰이 와서야 돌아갔다.

마스크를 판매하는 우리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런 식으로 판매를 해야 하는지, 우리도 고생이지만 주민들 마음도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물론 정부에서도 이렇게밖에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스크를 판매하는 직원들이 좀 편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새벽 6시부터 5시간씩 추위에 떨며 기다리시는 노인 분들을 생각한다면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간곡히 요청을 드린다. 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 물량을 미리 비축한 후 월요일부터는 아침 9시30분에 바로 판매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 제발 부탁드린다.

〈정리〉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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