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희의 썰] ‘이제와 돌아보니’(6)

윤설희 KB생명보험 부사장
윤설희 KB생명보험 부사장

조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리더십’이다. 가장 많이 받았던 연수는? ‘리더십연수’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나에 대한 ‘리더십 평가’이다. 나의 승진에 발목을 잡았던 항목은? 역시 ‘리더십 항목’이었다.

리더십, 타고난 것인가?

리더십 이슈는 언제, 어디서나 핵심 화두이다. 리더는 누구인가? 카리스마 작열하는 사람은 리더십이 강한가?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노는 꼴을 보고 “저놈은 장군감이야”라며 리더를 점지해 주셨던가?

그렇다면, 조용하고 수줍어서 카리스마를 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은 리더십이 약한 자인가? 과거에 타고난 기질, 행동특성, 성향으로 리더십이 있고 없음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리더십 자질론이다.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집단보다 개인 중심이다. 비즈니스도 물리적인 공감보다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 연결되는 플랫폼 중심이다. 개인과 플랫폼 중심에서는 여느 때보다 수평적 관계가 필요하다. 수평사회에서 리더십의 필요성이 줄어들까?

리더십 따라하기

이후 타고난 사람만이 리더가 되기에는 조직도 커지고 필요한 영역도 많아졌다. 한마디로 리더의 수요가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연구가 시작됐다. 잘하는 리더는 어떤 사람인가? 무슨 행동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을 연구하여 따라하면 리더십을 기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리더십 행동론이다.

이렇게 해서 최고의 리더를 벤치마킹하는 교육이 퍼졌다. 나도 리더가 된 이후 20년간 수많은 따라하기 교육을 받았다.

‘감성지능’을 제창한 다니얼 골맨은 리더십을 여섯 가지로 분류했다. ’카리스마형·(까라면 까), ‘목표 성취형’(가자~앞으로), ‘비전 제시형’(나를 따르라), ‘민주형’(여러분. 토론합시다), ‘친화형’(혼자 가면 빨리 가고 같이 가면 멀리 간다~), ‘코칭형’(모든 사람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리더십이 그것이다.

무엇이 바람직한 리더의 스타일인가? 리더생활 20여 년 만의 결론은 “그때그때 달라요.”

바이러스 감염 위기 상황이다.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해 오랜 토의로 대처방안을 마련할 것인가? 아니다. 위기 때는 상황을 빠르게 분석하고 신속한 실행을 위한 명령, 지시, 감독의 카리스마형이 빛을 발할 것이다.

결론은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구성원들이 이미 충분히 동기부여가 돼 있는 경쟁력 있는 팀을 맡았다고 하자. 여기에 리더가 일일이 잔소리하며 따라다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은 짬만 나면 구직사이트를 뒤질 것이다. 특히 밀레니얼과 실력자들은 말없이 제 갈 길 간다. 이들에겐 도전적 목표를 공유하고 비전만 제시하면 된다. 그들은 스스로 움직인다.

구성원 역량의 낮고 자발성이 떨어지는 조직에서 참여와 토론의 민주형 리더십이 적합할까? 아마 무엇 하나 결정 못 하고 같은 주제를 맴돌 것이다. 새로운 환경이 빠르게 펼쳐지고 있어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 혁신의 순간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상황과 구성원에 따라 각기 다른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것을 어떤 책에서는 골프채 리더십이라 표현했고, 얼마 전 들은 강의에서 교수는 ‘리더십의 모자 바꿔 쓰기’라는 표현을 썼다. 영화제목을 빌리자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이다.

골프채 리더십

그렇다. 롱홀에서 티업하면서 아이언을 잡는 사람이 있는가? 괴력의 소유자라면 몰라도. 그런데 이것도 답은 아니다.

눈앞에 한 번에 넘기 힘든 해저드가 있다면 드라이브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린에 올라서서 긴 채를 휘두르는 사람이 있는가? 평소 카리스마 작렬하는 사람도 숨도 아껴 가면서 소심하게 퍼터를 움직일 것이다.

나는 어땠는가? 보통 세컨샷으로 잡는 우드가 유난히 잘 맞았다. 드라이브보다 거리가 더 나가는 경우가 많아 동반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우드가 삐끗하기 시작했다. 다른 클럽을 사용한 적이 거의 없는지라 샷은 형편없어졌다.

내 리더십도 이러했을까? 나의 기질 대로, 내가 성공한 특정 상황에 매달려 동일한 스타일을 고집했나? 신속을 요하는 순간에 팀원들에게 이것저것 검토시키느라 시간을 소비했고, 반대로 긴 호흡이 필요한 순간에 당장의 결과를 위해 성마르게 그들을 독촉하진 않았나? 역량 있는 직원에게는 권한을 위임했고,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직원에게는 차근차근 가르쳤는가? 내 골프가 내 리더십을 반영했다.

그간 내가 상황과 구성원에 따른 적합한 채를 선택지 못했음을 몇 년 전에 깨달았다. 이후 나는 상황에 따라 다른 리더십을 사용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긴 시간 굳어진 내 행동 특성을 단박에 바꾸기에 시간은 너무 짧았다. 어쩌면 리더로서의 기간만큼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조직 생활은 거의 끝나간다. 아쉬움이 밀려온다.

삶의 모든 장면이 리더십 현장

그럼에도 지금 나는 다시 힘을 낸다. 내 리더십이 좀 더 유연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자각하지 않았는가? 모든 변화는 알아차림과 인정에서 시작된다. 그 순간이 새로운 출발점인 것이다.

그렇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30년 조직생활보다 더 긴 시간이 내 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조직에서의 기회는 다시 없을지라도 삶의 다른 장면에서 여러 가지 골프채를 잡아 보련다. 우리 인생 자체가 어디서든 이끌고 이끌리는 리더십의 현장 아니겠는가?

후배들이여! 지금 그대의 리더십은 어떤 모습인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조직에 있을 때 시작하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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