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고시 순혈주의 비판 이후 배려 흔적

보도자료 내고, 비고시 12% 달성 자평
“그래도 진일보” “언발에 오줌누기” 교차
“공직사회 다양성 차원, 비고시 배려해야”

공직사회가 고시 출신 편중 현상이 심화되면서 고시 순혈주의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정문에서 본 정부청사.
공직사회가 고시 출신 편중 현상이 심화되면서 고시 순혈주의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정문에서 본 정부청사.

기획재정부가 18일 과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115개 과장 직위 가운데 60%인 68개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인사다.

이례적으로 ‘2020년 과장급 정기인사 실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그러면서 이번 과장급 인사는 우리 경제의 당면 현안 대응과 함께 직위별 전문성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인사의 주요 특징으로 조직 기여도와 업무 성과가 높은 유능한 인재를 발탁했다는 점을 첫 번째로 꼽았다. 김영노 조세정책과장, 홍민석 종합정책과장, 장윤정 고용환경예산과장 등을 예로 들었다.

많이 바뀌었지만, 외부 파견자나 현안 태스크포스(TF) 주무과장 외에는 업무 연속성을 위해서 주무과장들을 상당수 잔류시켰다고 밝혔다.

세대교체도 꼽았다. 행정고시 45~46회 젊고 유능한 인재를 주요 과장으로 발탁해 조직의 활력을 제고했다고도 했다.

백미는 네 번째 특징이다.

기재부는 최초로 과장 직위 중 10%를 여성으로, 12%를 7급 공채 출신 과장으로 구성함으로써 균형인사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늘었을까. 여성은 10명에서 11명으로 1명, 7급 출신은 12명에서 14명으로 2명이 각각 늘었다.

하지만, 7급 공채 출신 가운데 기재부 내 실·국에서 주무과장은 한 명도 없었다. 이번에 승진을 한 김장훈 방위사업예산과장과 강준희 출자관리과장도 주무과장 자리는 아니다.

기재부노동조합(조합장 김충현)은 지난 13일 ‘기획재정부 서기관 인사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낸 바 있다.

기재부에서 11명의 서기관 승진자가 나왔는데 모두 고시 출신으로 채워지고, 7급 공채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노조는 또 “268명의 서기관 가운데 205명이 고시 출신이고, 63명의 비고시 출신도 대부분 무보직이며, 부이사관은 59명 모두가 고시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기회 평등과 고시 카르텔을 깨뜨리기 위한 할당제를 요구했다.

앞서 조달청노조도 성명을 내고 고시 순혈주의를 비판했었다.

고시 출신으로 채워진 부처의 장·차관이나 실·국장들은 이런 고시 순혈주의 비판에 예민하다. 부처는 물론 인사혁신처 등에서도 고시와 비고시 통계는 내놓길 극도로 꺼린다.

예전에는 그래도 비고시 출신들을 배려해 국장 가운데 한둘은 나올 수 있게 인재풀을 운영했는데 언제부턴가 고시 출신의 독주체제가 구축됐다.

그래서 발탁을 하려 해도 비고시 출신 적임자가 없어 쓸 수가 없다고들 한다. 사람을 키우지 않았으니 적임자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가에서 노조를 중심으로 비고시 출신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각 부처 관리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기재부도 “할당제를 공식화할 수는 없지만, 배려하겠다”며 비고시 출신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어떻든 노조가 성명을 통해 비판을 한 뒤 기재부에서 비고시 과장이 둘 늘어난 것은 맞다. 이를 두고, “과거에 비하면 진일보한 면이 없지 않다”는 시각과 “선심쓰듯 두 자리 늘린 것은 ‘언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판이 교차한다.

한 비고시 출신 사무관은 “자리를 만들어야 사람이 크는데 사람탓만 하는 것은 땅은 파지 않고 물이 안 나온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면서 “공직사회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비고시 출신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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