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거사 안정훈의 아날로그 세계일주(2)

안정훈 전 공군 정훈감(준장)
안정훈 전 공군 정훈감(준장)

세계일주는 내가 젊은 시절부터 항상 품고 살아온 꿈이었다. 그러나 내가 2017년 4월 한국을 떠날 때는 세계일주 같은 건 전혀 계획에 없었다.

그냥 모처럼 긴 휴가를 내어 러시아로 가서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올 생각이었다. 정말이지 729일간 49개의 나라를 돌아보는 긴 여행이 될 줄은 몰랐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쩌다 ‘뜻밖의 행운’(serendifity)을 만날 때가 있다. ‘세렌디피티’는 페르시아의 우화 ‘세렌딥의 세 왕자’에서 비롯됐다.

세 왕자가 여행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되는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된 것에서 유래 된 단어다.

세계 최대의 쇼핑몰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차고에서 중고 책 몇 권을 판 경험이 자신의 세렌디피티라고 말했다.

나에게는 시베리아 여행을 시작한 것이 세렌디피티였다. 자신을 부정이 아니라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만날 수 있는 보물이다.

여행의 계기와 시작은 우연처럼 찾아왔다. 2017년 3월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5월에 중국으로 ‘삼국지 역사 유적 탐방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가기로 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준비물을 챙겼다. 준비가 끝났는데 갑자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가 터졌다. 한중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다. 우리는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여행을 미루기로 했다.

모처럼 큰맘 먹고 3주간의 긴 휴가를 내고 들떠서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휴가를 반납하기보다는 어디든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쿠바나 남미를 생각했다.

그러나 나 혼자 떠나기엔 건강, 자신감, 경험 등 모든 것이 부족했다.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붕 떠서 지내다 영감처럼 떠오른 곳이 시베리아였다.

학창시절 감명깊게 여러 번 보았던 오마 샤리프 주연의 영화 ‘닥터 지바고’의 무대인 시베리아 횡단을 해보기로 했다.

마음이 정해지자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편도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심한 감기 몸살에 걸려 2주 넘게 헤매고 있었다. 출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자신감이 급 하락했다. 특히 동행도 없이 혼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를 장기간 여행한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지 잘 알기에 걱정이 점점 커졌다.

그래도 나는 떠나기로 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여유 있게 천천히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친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중국 대신 시베리아로 떠나게 됐지만,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때 우연히 읽은 시 한 편이 큰 용기와 힘을 주었다.

여행은 혼자 떠나라

-박노해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내가 사라질 떄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 갈 때
달려가도 멈춰 서도 앞이 안 보일 때
그대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려운가
떠날 수 있다는 용기가 충분한 존재감이다
여행을 떠날 땐 혼자 떠나라
함께 가도 혼자 떠나라
그러나 돌아올 땐 손 잡고 오라
낯선 길에서 기다려 온 또 다른 나를 만나
돌아올 땐 둘이서 손잡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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