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무원의 사는 이야기

세종 살면서 서울에 반전세 집 얻은 박 과장
주말 부부 상경해 문화생활에 쇼핑까지…
속내는 애들 때문에 울며겨자먹기 두집살림
“내려오라고만 하지, 이주자 배려는 없어”

세종 이주 4년차 박 과장은 서울과 세종 두집살림살이를 한다. 서울에 서울학숙을 두는 것은 정부와 세종시가 이주 공무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주장한다. 그래픽 이지미 픽사베이
세종 이주 4년차 박 과장은 서울과 세종 두집살림살이를 한다. 서울에 서울학숙을 두는 것은 정부와 세종시가 이주 공무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주장한다. 그래픽 이지미 픽사베이

정부세종청사 모 부처에 다니는 박 과장. 그는 50대 중반의 고참 과장이다. 서울살이를 하다가 소속 기관이 세종청사로 옮겨 오면서 이주한 지 4년이 넘었다.

그는 지금 세종에서 집을 장만했지만, 서울 성북구에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아파트를 얻어 두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엔 부부가 같이 서울에 간다. 20년 넘게 산 삶의 터전인 성북구에서 친구도 만나고, 부부가 영화도 본다.

박 과장은 15년째 지속되고 있는 동네 산악회원들과 도봉산이나 북한산을 오르기도 한다. 친구들과 만나서 주말에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래도 서울에서 어울리다 보면 아무래도 듣는 게 다르다.

강원도가 서울시에 두고 있는 강원학사. 서울신문DB
강원도가 서울시에 두고 있는 강원학사. 서울신문DB

박 과장 배우자인 김 여사는 더 바쁘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 때론 콘서트까지 문화생활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쇼핑이다.

재미도 쏠쏠하지만, 열심히 할인점이나 대형마트를 돌아다니는 것은 세종보다 물건도 많고, 품질도 좋은데 가격까지 싸다는 것이다. 김 여사의 정례 서울 나들이의 이유 가운데 하나다.

물건은 별로 없는데 가격은 비싼 게 세종시다. 그래서 특별자치시인가. 세종에서 보낼 한 주간의 물품들을 서울에서 사온다. “이것저것 많이 사면 기름값은 빠질 걸요.” 김 여사의 얘기이다.

누가 들으면 세월 좋다고 할 수도 있다. 세종에 살면서 서울에까지 월셋집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한다고….

그러나 정작 박 과장 부부는 울화통이 터진다.

여유가 있어서 장만한 반전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울며겨자먹기로 얻은 집이다.

세종으로 내려갈 때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과 딸들 때문에 얻은 집이다. 이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유용하게 사용했다. 아들은 취직을 해 집을 떠났지만,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은 아직도 전세살이를 한다.

금전적 손실은 그만두더라도 두집살림의 불편과 서울에 남겨둔 아이들 걱정 때문에 정부를 욕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이전 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에게 이주를 권장한다. 연초부터 세종시 출퇴근 버스를 줄인 것도 그 일환이다.

직장 때문에 많은 공무원이 서울을 등지고 내려왔다.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러나 2012년 7월 이후 8년째다. 세종시도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정부도 세종시도 내려오라고만 하지 이주 공무원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

대표적인 게 학숙이다. 전국의 광역 지자체는 대부분이 ‘학숙’ ‘학사’라는 이름의 서울 유학생을 위한 거주공간을 제공한다.

광역 말고도 시·군에서 운영하는 학숙이나 학사가 20여 개에 달한다. 유서 깊은 남도학학숙외에도 세종시 인근 충남도 충남학숙이 있고, 충북도 학사가 있다. 서울과 붙어 있는 경기도도 장학숙을 두고 있다.

물론 학숙을 세운다고 수요를 다 채울 수도 없고, 국민의 비판이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종학숙’은 이주민 대책과 관련, 정부와 세종시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게 박 과장의 얘기이다.

박 과장은 “정부나 세종시나 국회 분원 설치나 청와대 이전 등 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이주민들이 맘 붙이고 살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들이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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