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희의 썰] ‘이제와 돌아보니’(3)

윤설희 KB생명보험 부사장
윤설희 KB생명보험 부사장

성질, 그놈의 성질이 항상 문제다. 좀 참을 걸 하고 후회하며 다 지난 일을 곱씹으며 시나리오를 다시 써본다.

‘욱’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응하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시간이 갈수록 자책도 해 본다. 그때 조금만 참았으면 어땠을까.

혹시 반대인 경우도 있는가. 그때 그 인간의 싸대기를 한번 갈겼어야 했는데, 또는 그 상사에게 “그럴 거면 니가 해라 하와이”하며 박차고 나왔어야 했었는데….

하지만, 대부분은 지나고 나면 뚜껑을 맘껏 열었던 것보다 좀 삭힐 걸 하는 후회가 압도적이다.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조직에서든 사적인 영역에서든 불쾌한 상황과 사람을 수시로 만나며 뚜껑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그건 훌륭한 사람이든 부족한 사람이든 간에 관계없는 우리의 본능이다.

다만, 화가 나고 분노를 느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러다 보니 종교에서, 철학에서, 심리학에서, 뇌과학에서 일제히 분노의 원인과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책들이 나오고 있다. 무려 2000년 이전부터 말이다.

분노는 다스리다 보면 어느덧 육체와 비슷하게 근력이 생겨 웬만한 상황은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마음, 감정의 근력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적게 후회하며 화나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을까.

화날 때의 나만의 루틴을 만들자. 옳은 일을 위해서, 비합리적인 상황에 맞서서 주저 없이 뚜껑을 열곤 했던 나는 그로 인해 조직에서 ‘훅~’ 가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이후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고 이제는 후배들에게 쫓아다니며 나만의 루틴을 전도하게 되었다.

나만의 루틴 첫 번째는 화나는 그 순간 <심호흡 6번 하기>이다.

딱 1분 걸린다. 호흡은 실제 우리의 감정상태를 표시하는 바로미터이다. 흥분하거나 긴장하면 호흡이 빨라지고 손에 땀이 나며 근육이 긴장된다. 거꾸로 이런 상황에서 심호흡을 하게 되면 실제로 흥분과 긴장이 완화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널려 있다.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 큰 숨 여섯 번 쉬기이다. 그러는 사이 내 앞의 상대는 하던 짓을 계속 할 것이다. 그러나 딱 1분만 봐주자.

두 번째는 <알아차리기>이다.

일단 첫 번째 루틴을 제대로 했다면 분노는 최소 10%는 줄어든다. 그런 상태에서 “내 마음에 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네, 가슴 중앙부분이 좀 뜨거워지네”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웬 헛소리냐”고 “꼭지도는데 그럴 정신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하는 후배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제삼자의 눈으로 자신의 마음과 육체를 관찰할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동물이다.

강아지가 “우리 주인이 간식 가지고 장난치네. 열이 슬슬 올라오네”라고 알아차리지는 않지 않은가. 사람이 무언가를 관찰하게 되면 상황에서 물러나게 되고 객관적이 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루틴을 수행하는데 1분 10초면 충분하다. 두 번째 루틴에서 화는 10% 줄어든다. 이제 80% 남았다.

세 번째는 <나의 감정 들여다보기>이다.

이건 좀 시간이 걸리고 여유가 필요하다. 일단 상대에게 타임 아웃을 청한 다음 돌아서서 생각하자. 내가 지금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진짜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화가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는 특정 감정의 표현이다. 나는 지금 인정받지 못해 억울한 건가.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내가 독박쓸 것 같아 두려운 건가.

아니면 상대에게 무시당한 느낌인가. 혹시 상대의 우월성에 대한 질투심인가. 아니면 이 일과 무관하게 내가 상대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는 선입관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요즘 내가 여기저기 치받쳐서 짜증이 난 건가.

화 이면에는 이처럼 억울함, 두려움, 서운함, 질투심 등의 감정이 있고 때론 여러 감정의 복합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 주된 감정은 존재한다. 그걸 찾느라 분노는 조금 더 줄어든다.

네 번째는 <상대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이다.

이 일이 꼭 나한테만 일어나는 일인가. 저 사람은 나를 골라 골탕먹이려고 작정한 건가.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일은 누구에게나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었고, 그 사람은 자기 일을 열심히 했던 것뿐이라는 사실이 보인다. 여기까지 하면 분노는 어느 정도 남아 있을까.

다섯 번째, <분노의 풍선을 살짝살짝 터트리기>이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화풍선’이 있다고 한다. 물론 풍선의 크기와 그 자체의 유연성도 각기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풍선에는 임계점이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참는 것은 위험하다. 분노는 오랜 기간 축적되면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으며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그러다 빵 터지면 통제력을 잃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고 폭발한다. 이것을 돌발성 분노라고 하고 심하면 후에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 전에 살짝살짝 터트리자. ‘어떻게?’ 날카로운 말보다 뼈있는 유머를 사용해 보자. 팽팽한 화풍선에 바람도 빠지고 내 마음도 어느 정도 시원해진다.

나는 오늘 자기 자신도 답을 찾지 못하는 난처한 일을 깔끔하고 신속히 처리하라고 재촉하는 보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총 들고 강도질 한번 할까요. 사장님이 뒤 좀 봐 주실 거죠.” 나는 화풍선을 살짝 터트렸고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아~~ 이 사람도 답이 없는 거구나. 나만 미워하는 게 아니구나.

나는 조직에서 욱하는 성질을 다스리지 못해 일을 그르치고 사람 관계도 여러 번 망쳤다. 그때는 내가 제일 정의롭고 바른말을 한다고 믿었다. 실제 그런 내 모습에 지금껏 따르는 ‘광팬’ 후배들도 꽤 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컸고 나는 그로 인해 여러 번 걸려 넘어졌다. 가장 크게 넘어진 것은 예상보다 한참 늦어진 임원 승진이었다.

그것들은 몹시 아팠고 나는 일보다는 뒷담화를 일삼는 부하 직원과, 앞뒤가 다른 동료와, 사람 볼 줄 모르는 상사와, 공정치 못한 조직을 원망했었다. 그러나 이만큼 지나 보니 그건 나 스스로 넘어진 것이었다.

‘지금 과거의 욱했던 것을 후회하냐고’ 아니다. 지금은 그 일들이 고맙다. 내가 그때 걸려 넘어지지 않고 요행히 승승장구했더라면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의 실수와 부족함이 있었기에 지금 나는 더 나아지려고, 성장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후배들이여 이 말은 계속 욱하고 뚜껑 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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