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점검 요란하기만 하고, 대책은 '속빈 강정'
틀에 박힌 위정자 현장 점검에 국민 반응 냉담!

8일 소방관들이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물에 잠긴 자동차를 끌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소방관들이 폭우로 멈춘 자동차를 물에서 밀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과 9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물 폭탄'처럼 집중 호우가 내렸다. 기상청에 따르면 115년만의 폭우로 도심 곳곳이 물에 잠겼다. 특히 서울에 500mm 이상 비가 내려 장마철 전체 기간에 내릴 양이 이틀새 쏟아졌다.

서울시내 25개 구 가운데 동작구엔 시간당 141mm 내려 시간당 강수량도 80년 만에 최고 많은 양을 기록했다. 집중호우로 사망 14명에 실종 6명, 부상 26명(17일 현재)이 발생했다. 이재민은 1700여 세대 2800여 명, 각종 침수와 사면 유실사고 접수 건도 늘어나고 있다.

보여주기식 피해복구 현장점검 혼란만 부추긴다

당시 집중호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되고,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해 비상 3단계인 ‘심각단계’까지 격상시켰다. 현장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자, 정부와 해당 지자체의 재난관리 담당자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집중호우 관련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현재의 재난관리 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국민께서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끝까지 조치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국무회의에서도 각 부처 장관한테 수시로 현장을 찾아 필요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수해를 입은 당사자와 이를 지켜본 언론의 반응은 냉랭했다.

코로나19 대응이나 이번 수해 역시 "과학적 근거에 의해 원점에서 재검토 하겠다"는 말이 쉽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적 방역을 하겠다던 코로나 대응은 다시 창궐하고 있다. 지난주는 통계가 잡힌 216개 나라 가운데 인구 대비 확진자 수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재난관리 초기대응, 과감한 행동으로 출발하라

각종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기관장들은 앞다퉈 경쟁하듯 현장 방문에 나선다. 일부 동선을 살펴보면 보여주기식 행위라는 의구심을 떨쳐내기 힘들다. 정치적 성향이 짙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현장 방문 일정을 봐도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출발시간부터 복귀까지, 현장을 둘러보고, 피해자들과 현장 책임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도 각본처럼 잘 짜여 있어서다.

피해 현장을 돌아보는 사진이 언론에 등장할 뿐, 예전과 달라진 재난 대응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심한 피해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절박한 심정을 헤아려 보탬이 되는 대책이 절실하다. 하지만 황당한 말을 건네 되레 피해자들의 실망감을 더 키우기도 한다. 

물론 재난 현장을 방문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가더라도 보여주기식 의전에 신경 쓰지 말고,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문제점을 찾아 정책에 반영하라는 얘기다. 정상적이지 않은 현장 점검 모습에 이를 탓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재난 발생 때 언론에서 현장방문 모습을 잡아주니까, 이런 행동이 관행처럼 익숙해진 듯하다. 국회의원도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다 보니 "사진 잘 나오게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말이 불쑥 나오지 않았겠는가.

여기에 재난기관 담당자와 기관장 보좌진들은 한발짝 더 앞서 간다. 언론을 통해 자신이 모시는 기관장이나 주군(?)이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전파되길 바라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어쩌면 재난현장과 피해 당사자들은 그저 이미지 홍보를 위한 수단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각본에 얽매이지 말고, 복기하는 자세로 임해야

진정한 재난관리 현장이 걱정된다면 현장 관리자나 기관장, 국회의원까지 잘 짜여진 방문 시나리오부터 과감히 버려야 한다. 언론 역시 각본대로 움직이는 현장 행보에는 등을 돌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분히 정치적이고, 이목에만 집중하는 의전 관계를 벗어나야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틀에 박힌 현장 담당자의 브리핑만으로 평소 문제점을 파악하긴 쉽지 않다. 현장 브리핑 담당자는 앵무새처럼 위기 대응 메뉴얼에 대해 충실히 설명할 것이다. 마치 전방부대에서 사단장이나 연대장이 방문하면 "우리 부대는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해 물 샐틈 없는 경계태세로 적 침투에 만전을 기한다"고 보고하는 것처럼~.   

보고되는 것처럼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사고나 재해는 예고없이 찾아온다. 적 침투에 만전을 기한다는 군부대에서도 '노크 귀순'하는 일까지 발생하지 않았던가. 언제 어느 곳을 방문하든 소리 소문없이 다가가 현장을 살피고, 필요한 조치를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언론에서도 사전 각본없이 공감되는 소식을 자주 접했으면 좋겠다. 꼭 현장에서 연출된 듯 찍은 사진을 내야만 되는지 돌아볼 일이다. 

재난정책 담당자 역시 각본에 따른 상황설명에 현혹되지 말고, 수시로 현장을 점검해 미비점을 보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불시 점검해 보니 미흡한 점은 무엇이고, 보완돼야 할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체크해 정책에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정부가 강조하는 '적극행정' 아니겠는가.

봉사활동 역시 피해주민에게 인상을 쓰게 만드는 것이라면 안하는 편이 낫다. 위정자를 비롯,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피해 주민의 상심한 마음부터 헤아릴 수 있는 역량부터 갖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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