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인의 좌충우돌 사회적응기(2)

이서인 시인·여자정훈장교1기
이서인 시인·여자정훈장교1기

퇴직 후 어느새 일 년이 되었다. 안식년이라 칭하며 스스로에게 준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1년 동안은 출근 도장 찍는 일과 책임 있는 일은 안 하리라 굳게 다짐했던 터라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세상 일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라서 딱 하나 직책을 맡고 나니 생각만큼 쉬어지지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여고 동창회장을 떡 하니 맡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여고 동창회장 자리가 2년 동안 공석이었는데 동창들이 내가 백수가 된다는 걸 아는 순간 득달같이 자리를 떠맡긴 것이다.

기수 동창회장을 맡고 보니 여고 총동문회 당연직 이사가 되었고 지난해 1월 처음으로 동문회 이사회에 나가서 인사를 하였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00기 동창회장이고 나이는 5학년 8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 드디어 막내 기수가 들어왔네. 젊기도 해라. 앞으로 잘해봅시다.” 선배들의 반응이다.

공직에서 물러날 나이가 돼서 사회로 진출했는데 막내라니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깜짝 놀라서 선배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17년 위의 선배부터 바로 위 기수 선배까지 까마득했고 그야말로 내 위치는 막내였다.

그다음부터 내가 모임에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리 정돈, 플래카드 달기, 수저 놓기, 회의록 전달하기, 사진 찍기 등 영락없이 공직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데자뷔였다. 앞으로 내가 막내를 면하는 길은 하루빨리 다음 기수를 영입하는 방법뿐이다.

공직을 떠나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서 아주 생경하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100세 시대에 대한 적응이었다.

지난해 제20회 노인의 날을 맞이해 친정아버지께서 시장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파트 경로당에서 4년간 노인회장을 맡으며 봉사하신 결과다.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오시다가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하실 때 훈장을 받은 후 20년 만에 받는 표창이라 꽃다발을 준비하여 행사장으로 갔다.

행사장에 가보니 노인분들이 약 2000여 명 계셨다. 말로만 들었지 대부분 75세가 넘으셨는데 아직 정정하신 어르신들을 직접 뵈니 100세 시대란 말이 제대로 실감이 났다.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노인회장을 맡으셨다고 해서 이제 팔순이 넘으셨으니 회장을 맡으실 연세가 되셨는가 보다 했다. 그래서 “힘드신데 젊은 사람들 있으면 시키시지 그래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내가 우리 경로당에서 두 번째로 젊어. 막내가 75세인데 그 사람은 총무야”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회장이 나이가 들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젊기 때문이고 회원의 평균 연령이 85세라고 하셨다.

70대 노인들은 아직 일을 하느라 경로당에 못 오고 한편 너무 일찍 나오면 물주전자 심부름이라고 해야 하니 아랫사람 노릇 하기 싫어서 안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에 또 한번 100세 시대를 실감한 것은 학연을 기반으로 한 지부 모임에서였다. 몇 번이나 초청하길래 자꾸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모임에 나갔다.

인원이 다 모여 소개를 하다 보니 제일 연장자가 53학번이라고 했다. 53년생도 아니고 53학번이라니. 재빨리 계산을 해보니 88세였다. 다행히도 이 모임에서는 86학번이 막내여서 나는 막내에서 두 번째가 되었다.

지난 일 년간 사회생활을 통해서 새롭게 느낀 것이 있다. 100세 시대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라 모든 퇴직자들이 맞이해야 할 나의 새로운 인생이라는 것이다.

평균 60세에 퇴직한다고 하면 적어도 활동성이 있는 90세까지 30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언제까지 막내 역할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100세 시대를 살아가려면 몇 가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마음의 준비이다.

기존의 조직에서 받았던 대우를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 1막의 직위나 학벌, 재산 같은 것을 내려놓고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전에 내가 말이야 하는 순간 100세 시대에서도 ‘꼰대’로 밀려난다. 돈을 벌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면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제일 꼴불견이기 때문이다. 그가 막내라면 더더욱 그렇다.

둘째는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회생활이든지 조직이 잘 돌아가려면 막내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는데 그중에 제일은 몸을 잘 써야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다 보면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점점 적어지게 된다. 눈치껏 물주전자도 나르고 의자도 정리하고 플래카드도 붙이려면 건강해야 막내 노릇도 잘할 수 있다. 그래야 사회 선배들에게 귀염도 받는다.

셋째는 즐거움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 전반을 성공하려면 국·영·수를 잘하고 후반을 성공하려면 예체능을 잘해야 한다는 말에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50세까지는 공부를 잘해서 출세해야 행복하다는 것이고 이후 100세까지 행복하려면 체육활동으로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예술적인 활동으로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웃을 일이 없다고 한다. 삶의 목표와 희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 막내로서 조직에 활력을 주려면 먼저 나 자신이 즐거워야 하고 이 즐거움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 예술활동에서 얻을 수 있다. 그것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할 때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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