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노동자‧다문화 가정 권익보호 위해 동분서주
늦깎이로 공직에 입문했지만 축적된 경험 큰 보탬

통계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족 구성원은 106만여 명으로 인구의 2.1%를 차지한다. 이 중 다문화 신생아 수는 1만 8000여 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5.9%에 이른다. 다문화 구성원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고, 여전히 차별과 소외를 받는다. 정부는 2021년 다문화가족 정책에 대한 큰 방향을 마련해 발표했다. 경기도 시흥과 안산시는 외국인 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이다. 이들에 대한 관심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전국 최초로 공모를 통해 임용된 시흥시청 김태희(54) ‘다문화정책관’을 만나 공직자가 된 계기와 외국인 근로자·가족에 얽힌 얘기를 들어봤다.

김태희 다문화정책관이 관내 외국인지원센터에서 맡은 업무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공생공사닷컴
김태희 다문화정책관이 관내 외국인지원센터에서 맡은 업무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공생공사닷컴

출장지에서 돌아오자 마자, 약속 장소인 관내 외국인지원센터로 달려와 깊은 숨을 몰아쉰다. 그 모습에서 바쁘게 살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름이 유명 가수의 아내와 같다고 농담을 건네자, 종종 얻어듣는(?) 말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이름 때문에 ‘비(레인)부인, 미스코리아, 탤런트’란 별칭도 얻었다고 말을 보탠다. 먼저 다문화정책관이란 직책이 낯선데 관련해서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 근로자들의 조력자 역할

다문화정책관이란 직책을 사용한 것이나 공모를 통해 담당관을 채용한 것도 시흥시가 처음이다. 시흥시는 인구의 11%가 외국인이다. 외국인 주민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5%를 넘으면 통상 다문화 사회로 분류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미 다문화 사회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말 시흥시가 전국다문화도시협의회 회장 도시가 되면서 다문화정책관 채용 공고를 냈다. 여기에 응모했는데 채용돼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예전과 달라졌다지만 아직도 외국인 근로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편견과 차별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도 언어장벽 때문에 방역 정보를 모르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또 일부 자치단체는 재난지원금 대상에서조차 제외하기도 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시흥시는 다문화가족을 위해 외국인지원센터 운영을 비롯, 이주청소년 지원, 외국인 밀집거주지역 인프라 조성사업, 의료지원, 중국동포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용하고 있다.

전담조직 신설로 외국인 주민정책 추진 기반강화

외국인 근로자와 가정을 돕기 위한 전담조직이 만들어지면서 정책추진에 힘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외국인 근로자의 정착과 다문화가족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도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와 영주귀화자를 대상으로 정착교육과 데이터 구축, 지역특화비자에 대한 시험사업도 한다. 아울러 한국행정학회, 이민정책과 관련된 학회나 이민정책연구원 등과 실태조사‧연구에도 적극 협력하고 있다. 정책 우수 시범사례를 발굴해 홍보하는 한편, 다른 지자체와 공유한다. 모두 다문화정책관이 해야 할 업무라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다문화가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지난 일을 얘기하자면 말이 길어진다.

학위취득부터 취업까지 외국인 근로자에 관심

전남대 공대를 졸업한 뒤 아주대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특허사무소에 취업했다. 이후 결혼과 자녀 양육으로 공백이 있었지만, 다시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공부하던 중 국내 체류 외국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7년 비영리민간단체인 외국인노동자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된 것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외국인노동자 임금체불, 사업장변경, 퇴직금 미지급, 의료지원, 국가별 공동체 지원 등 고용허가제 관련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다양한 일을 했다.

다문화가족 지원법 제정 이전부터

결혼이주여성 체류 지원 상담, 부부 상담, 다문화가족 자녀‧영유아 돌봄 어린이집 운영 등 결혼 이주여성뿐만 아니라, 남편, 시댁과의 갈등 해소를 위한 활동도 했다.

이러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다문화 사회 전문가 학위과정에 진학하여 3년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이민법과 관련된 제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현장과의 정책 연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박사학위 취득 후, 다시 이주노동자 쉼터를 개소하면서 현장 활동을 지속했다. 쉼터 운영을 위해 대학과 대학원에서 강사를 하면서 버텼지만 결국 경제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법인에 운영권을 넘기고 말았다.

지천명(知天命·50) 나이에 임기제 공무원 응시

나이테가 50줄이 되면서 월급쟁이를 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래서 안전관리사협회를 통해 건설노조와 산업안전보건과 관련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신설된 경기도 노동권익센터 산재보상지원 민간경력직 임기제 ‘가’급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이어 노동국이 신설되면서 산업재해 예방 업무를 전담했다.

자랑 같지만 경기도 산업재해 예방 기본계획 수립을 비롯, 예방 활동을 위한 노동 안전지킴이 사업을 31개 시·군에 시행·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도내 같은 국 소속 외국인정책과 업무에 대한 자문역도 했는데 그 덕분에 표창을 받기도 했다.

(외국인 근로자와 관련된 일을 일관되게 해왔는데, 기억에 남을 만한 사례와 정책 방향에 대해서 개선할 점은 없는지 물었다.)

작업 중 손목이 잘린 미얀마 노동자 지금도 연락

작업 도중 압축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 한쪽 손목이 잘린 미얀마 출신 근로자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무더운 여름 에어컨도 없는 컨테이너 숙소에 기거하면서 손을 다쳤는데도 일을 해야만 했다.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오가는데도 계속 일할 것을 요구하자, 결국 도망쳐 쉼터를 찾아왔다. 그와 함께 일하던 사업장을 찾아갔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서툰 우리말로 “사장님, 사모님, 반장님 다 손가락이 없어요”를 반복하며 울부짖었다. 손이 불편해서 일을 못 하는데 왜 자꾸 작업을 시키냐는 항의였다. 나는 산재보상 처리와 모형 손을 제작해서 끼워주는 걸 도와줬다.

그는 “모형 손이 진짜 같아요”라며 웃으며 좋아했다. 2년 만에 소액의 보상금을 받고, 자진 귀국했다. 미얀마에 돌아가서도 잘린 손을 감추기 위해 긴팔 셔츠를 입은 사진과 함께 지금도 내 안부를 물어온다. 통화 마지막엔 “미얀마에 오면 꼭 저를 만나고 가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한국 언니 집 왔다가 형부한테 성폭행당한 처제

또 베트남에서 언니 집을 찾아온 10대 처제가 50대 형부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한 사연도 잊혀지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온 여성 A씨. 그녀는 언니를 찾아 한국을 찾았다. 그의 언니 B씨는 한국인 K씨와 결혼을 했다. 남편과 나이 차가 많이 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언니 스스로 택한 길이었다.

그리운 언니를 찾아 어렵게 한국을 찾은 A씨. 그녀의 꿈은 한국 땅을 밟는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공항에 마중 나온 형부 K씨가 어린 처제를 보는 순간 짐승으로 돌변했다. 처제인 A씨는 공항에서 집으로 가던 중 용인의 한 야산으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로 고통스런 삶은 계속 이어졌다. 형부 K씨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언니를 죽이겠다”는 등 온갖 협박을 해가며 처제를 수시로 농락했다.

K씨는 베트남 아내와 4명의 자식을 낳았다.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처제 A씨는 결국 원치 않던 형부의 아기까지 낳았다. 아이는 현재 언니가 맡아 키우고 있다. 결국 신고로 형부 K씨는 구속돼 법정에 서게 됐고,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자매와 아이들 피신시킨 뒤 남편 경찰에 고발

그를 경찰에 고발했던 게 바로 나다. 자매의 사연을 전해 들은 나는 야밤에 베트남 자매와 아이들을 산속 움막으로 피신시킨 뒤, 남편 K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그가 검거될 때까지 야산을 오르내리며 음식과 물품을 배달했던 일은 지금도 생생하게 재생된다.

남편이 수감되고 나서, 가족들이 복지시설에 입소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여동생 A씨의 산후조리와 아이입양, 귀국 절차까지 돕느라 2년 여가 소요됐다. 복역을 마친 뒤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남편의 협박도 받았다.

한동안 아이들이 잘 크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 왔지만 지금은 단절된 상태다. 이 사건은 언론에서도 보도됐던 내용이다. 당시 언론 인터뷰 요청도 많았지만 일절 응하지 않았다. 왠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다문화정책 가족·복지 위주로 접근해야

한국인과 결혼한 이민자와 그 자녀를 다문화가족이라 한다. 정부의 다문화정책은 결혼이주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그 가족들의 복지향상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이주자 대부분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관계나 사회적 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다. 자녀 양육이나 교육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양육과 교육이 하나로 통합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 동포, 유학생 등 체류 자격별 대상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경제활동이다. 따라서 큰 틀에서는 고용·노동정책과 인구 정책적 접근이 우선돼야 하지만 부처별 법·제도를 통합적으로 총괄할 수 있는 조직 신설(이민청)도 검토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새 정부는 출입국 이민정책을 인구·노동·치안·인권 문제 등을 고려한 국가 대계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새 정부의 이민정책 수립에 있어서 현장의 상황과 목소리를 듣고, 충실히 반영하길 기대한다. 나는 현장에서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

【김태희는…】

학력) 전남대 고분자공학과, 아주대 공학석사, 강남대학 사회복지학석사, 성결대 행정학박사
전) 다문화가정어린이집 원장, 성결대학 객원교수, 광주교육대학원 강사, 지속가능경영재단 다문화경영센터장, 한국이민사회전문가협회 부회장, 한국안전관리사협회 센터장, 경기도청 노동권익과 주무관
현)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전문가, 경기도 시흥시청 다문화정책관

글·사진 유진상 大記者 jsr792@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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