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 4000여 소방공무원에 동해안 산불대응 관련 서한문
“주 업무도 아닌데…” 피로누적·희생자 나오자 불만 치솟아
이 청장이 직접 작성… 현장에서 느낀 점 등 진솔하게 전달
숨진 대원에 대한 애도와 인명과 문화재 보호 등 성과 지하
“진화과정 문제점 등 파악 계기돼… 꼭 보완하겠다” 약속도
노조 등 직원들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 보인다” 긍정 평가

이흥교 신임 소방청장. 소방청 제공
이흥교 신임 소방청장. 소방청 제공

“열흘간 밤낮없이 사력을 다해 화마와 맞섰던 사랑하는 동료 소방공무원 여러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산불 관련 업무로 충남소방본부 소속 직원 한 분이 유명을 달리하게 된 점은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이흥교 소방청장이 18일 6만 4000여 소방공무원에게 보낸 서한문의 일부다.

A4용지 3장으로 된 이 서한문은 역대 최장인 213시간 만에 진화된 경북 울진을 필두로 한 동해안 일대 산불 진화에 투입된 소방대원의 노고를 위로하고, 이 과정에서 순직한 소방대원에 대한 추모의 마음도 담고 있다.

“여러분 보며 동료애 느꼈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산불과 싸우며 몸은 한계에 이르고 마음이 지치는 일은 당연할 텐데 꺾이지 않는 투혼과 강한 정신력으로 현장을 누비는 여러분을 보며 새삼 소방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뜨거운 동료애가 벅차게 솟구쳤다”고 적었다.

이어 “(여러분의 노고 덕분에) 한울 원자력 발전소와 삼척 LNG기지 등 국가 주요시설 방어에 성공하는 한편, 금강송 군락지와 불영사 등 소중한 자연유산과 문화재를 지켜냈다”고 치하했다.

그는 특히 “산불 관련 업무로 충남소방본부 소속 직원 한 분이 유명을 달리하게 된 점은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동료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위기와 상처 통해 또 한번 배워

이 청장은 “위기와 상처를 통해 우리는 또 한 번 성장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두려움 없이 산불과 맞섰던 여러분을 국민은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이흥교 소방청장이 18일 6만 4000여 소방공무원에게 보낸 서한문 일부. 소방청 제공
이흥교 소방청장이 18일 6만 4000여 소방공무원에게 보낸 서한문 일부. 소방청 제공

이흥교 청장의 이 서한문은 이번 최장기 산불 진화를 위해 쉴 틈도 없이 현장에 투입되면서 피로가 누적되고, 급기야는 지원업무를 보던 소방관이 희생되면서 일선 소방대원들 사이에 누적된 불만을 다독이기 위한 것이다.

사실 산불 진화의 일차적 대응기관은 산림청이다. 하지만, 불이 나면 대응기관을 따질 겨를 없이 가능한 자원은 모두 동원되는 게 현실이다. 소방공무원도 예외는 아니다. 주무기관은 아니지만, 국민은 ‘불’하면 119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쉴틈도 없이 현장 투입 불만 폭발 직전

소방공무원들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응급업무 등 일반 소방업무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달려간 대원에 대한 지원시스템 등을 사전에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일하다가 투입됐는데 숙소도 정해져 있지 않고, 마스크조차 시민단체 등의 지원에 기대는 것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인력 운용 매뉴얼 등이 있었더라면 충남의 한 소방대원이 소중한 목숨을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취임 이후 사고 줄이어 현장 살다시피해

이흥교 청장은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측근들에게 안타까움과 함께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서한문에 소방관 노고에 대한 치하와 지원 시스템 및 장비 등의 보강 약속을 담은 것은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청장은 이 서한문을 직원들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썼다고 한다.

노조 등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현장 대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소통만해선 곤란… 결과로 보여줘야” 지적도

이 청장은 취임하자마자 터진 화성 물류센터 공사현장 화재사고, 광주 아파트 공사현장 붕괴사고, 이번 동해안 산불까지 사고가 이어지면서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광주 붕괴현장은 8차례나 방문했고, 이번 산불현장에도 열흘간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다고 한다.

한 소방노조의 집행부는 “서한문 등을 보면 노조 등 직원들과 소통하고, 그냥 머물다가기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 한다는 점에서 전임 청장들과 비교해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다른 노조의 한 간부는 “소통의지는 평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머물다가는 자리로 여기고 다른 청장들처럼 다시 권위주의적으로 바뀐다”면서 “소통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과물과 약속이행이다”고 말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2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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